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만 제국/성문화 (문단 편집) ==== 미소년 무희 '쾨젝'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oceks_-_Surname-i_Vehbi.jpg|height=25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creen-shot-2019-07-10-at-1.56.38-pm.png|height=25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öçek.jpg|height=25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ocek-ii-a80254-small.jpg|height=250]]}}} || 오스만 동성애의 중심에는 '쾨젝(köçek)'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매우 잘생긴 젊은 남성 [[노예]]를 '쾨젝'이라고 불렀는데 오스만판 남성 무희, 혹은 [[연예인]]이라고 보면 편하다. 보통 [[할례]]를 받고 7~8세부터 훈련을 받기 시작해 약 6년 동안의 혹독한 연습을 통해 양성되었고 항상 깨끗하게 면도한 모습을 유지해야만 했다. 나이는 10세 ~ 18세 사이였다. 쾨젝들은 춤, 노래, 악기 연주 등 다양한 분야에 모두 능해야 했다. 이들이 추었던 춤을 따로 'köçek oyunu(쾨젝 오윤누)라고 불렀으며 이들이 연주했던 음악은 'köçekçe'라고 불렀다.[* [[수피즘]], 아나톨리아, 발칸 지방의 전통춤들이 모두 합쳐져 만들어진 음악이다. 이 쾨젝 오윤누의 영향은 아직도 터키 음악에 남아있다.] '다불 쾨젝'이라 불리는 북으로 반주를 맞추었는데 한쪽은 양가죽으로, 반대쪽은 염소가죽으로 덮여있어 서로 다른 음색을 내었다고. 쾨젝들의 역할은 수많은 악사, 무용수, 곡예사 등과 함께 연회의 흥을 돋구게 하는 용도였다.[* 오스만 궁정에서는 보통 20명 정도의 악단이 쾨젝과 함께 공연을 벌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단순히 술탄과 귀족의 연회에만 불려다니던 건 아니었고 결혼식, 할례 행사, 잔치나 축제 등 큰 행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다.] 쾨젝들은 짙은 화장을 했고 동전, 보석, 금붙이 따위로 장식된 작은 검은색 혹은 붉은색 벨벳 모자 아래에 긴 머리를 말아넣은 뒤 기다란 베일로 장식했다. 일상복이 금자수가 들어간 붉은 벨벳 재킷, 역시 금자수가 들어간 실크 셔츠, 헐렁한 바지 '샬바르', 긴 치마, 등에 묶인 금박 벨트였을 정도로 대단히 화려하게 차려입고 다녔다. 다만 이 화려한 복장의 목적은 개인의 위엄을 과시하는게 아니라 관객들의 성적 욕구를 북돋는 것이었다. 오스만인들은 쾨젝들을 '감각적이고 매력적이며 여성적'이라고 평가했고 쾨젝들의 춤을 '성적으로 도발적'이라는 기록을 남기기까지 했다. 보통 엉덩이로 느리게 수평, 혹은 수직으로 8자를 그리며 춤을 추었고 리듬에 맞추어 손가락을 튕기는 게 쾨젝들이 추는 춤이었다. 딱 느낌이 오겠지만 대놓고 성적인 춤이었다. 쾨젝들이 관객들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일도 흔했다. [[이스탄불]]의 수많은 야간 술집들은 손님들을 모으기 위해 쾨젝들을 고용했다. 1805년 기준으로 이스탄불에만 600여 명이 넘는 쾨젝들이 활동했다고 할 정도. 쾨젝들은 관중들 사이에서 춤을 추며 손님들을 흥분시키는 역할을 했다. 손님들은 사이사이로 돌아다니는 쾨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소리를 지르거나 안경을 던져 깨뜨리곤 했다고. 술에 취한 청중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니 당연히 쾨젝들이 성추행을 당하거나 심하면 [[강간]]을 당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보다못한 [[압뒬메지트 1세]]가 이스탄불 야간 주점에서의 쾨젝 고용을 규제하기 시작했고, 1837년 이스탄불에서 쾨젝을 두고 손님들이 패싸움을 일으키자 아예 금지당했다. [[압뒬아지즈]]와 [[압뒬하미트 2세]] 황제가 하렘 문화 자체를 탄압하면서 쾨젝들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쾨젝들은 [[밸리댄스]]를 주로 추는 여성 무희 '첸기(çengi)'들보다 훨씬 인기가 많았다. 쾨젝들이 손님들에게 지명되어 불려나가는 횟수가 지나치게 많자 이를 극도로 질투한 첸기들이 일부러 쾨젝들을 독살해 죽여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분류:오스만 제국]][[분류:이슬람 성문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